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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기획 DEVICE HISTORY_4] THE FIRSTS, Typewriter

DATE. 2018.07.02.

타자기를 만나다. 후우웅…타타타타…철커덕…투타타타…철커덕, 콰광

일단 전원을 연결하면 탱크의 캐터필러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가 음산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한 줄이 쳐지면 간단한 키의 조작으로 포탑이 움직이듯 ‘철커덕’ 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후우웅…타타타타…철커덕…투타타타…철커덕, 콰광. 그렇게 해서 무수한 문자와 글과 이야기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하염없이, 거침없이, 쉼없이’

소설가 성석제의 책 ‘즐겁게 춤을 추다가’에 나오는 ‘레밍턴 전동타자기’의 한 대목이다.

타자기는 1714년 헨리 밀(잉글랜드)이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쓰지 않고도 인쇄소에서 찍어내는 것과 비슷한 글자를 적을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여 앤 여왕에게 특허를 받았다.
이후에도 1829년 오스틴 버트, 1833년 프리젠이 특허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 타자기들은 실제로 제작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최초의 실용적인 타자기는 1808년 펠레 그리노 투리(Pellegrino Turi, 이탈리아)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최초로 대량 생산된 타자기는 덴마크의 ‘라이트 볼'(skrivekugle, 1865)이었다.

최초로 대량생산된 타자기 ‘라이트 볼'(skrivekugle, 1865)

하지만, 컴퓨터의 등장 전까지 대표적인 사무기기로 주목받았던 타자기의 원리를 발명한 사람은 크리스토퍼 L. 숄즈(Christopher L. Sholes, 1819~1890)이다.

크리스토퍼 L. 숄즈(Christopher L. Sholes, 1819~1890)

철공소 공원이었던 숄즈는 동료인 그리든과 더불어 ‘책 페이지 번호 달기 기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그리든은 숄즈에게 번호 달기 기계로 숫자와 함께 글자까지 쓸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어렵다고 판단, 인쇄소를 경영하는 사무엘 소울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이후 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였는데, 타자기의 연구 및 제작은 숄즈가, 그리든과 사무엘은 보조 및 후원자의 역할을 각각 담당하였다.

숄즈의 연구는 의외로 빠르게 진행되었고, 목재의 실물 모형을 만들어 1868년 6월에 특허출원을 하게 되었다. 이 제품은 잉크 리본을 이용한 타자기 특허를 받았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제품이었다. 숄즈는 고민 끝에 현재와 같은 왼쪽 상단에 ‘QWERTY’를 배열하고 4개 열의 자판을 배치하는 타자기로 개량했다. 이 타자기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최초의 타자기로 평가된다.

QWERTY 키보드

처음에는 알파벳순서로 키를 배치하였지만, 고속 타자에 매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인접한 키를 연달아 치게 되면 타이프바 등이 자주 엉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후에 채택된 QWERTY키보드는 왼쪽 위 배열이 순서대로 Q-W-E-R-T-Y 순으로 돼 있는데 빠르게 사용할 수 있고, 엉키지도 않아서아직도 PC키보드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본따 만든 전 세계 대부분의 스마트폰이 채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숄즈는 두 친구와 상의한 끝에 당대 최고의 실업가인 딘스모어와 요스트에게 1만 2000달러를 받고 타자기의 특허를 팔았다.

크리스토퍼 숄스가 동료들과 함께 개발한 기계식 필기장치를 가지고 당시 재봉틀과 총기를 제작하고 있던 레밍턴사를 찾아간 지 2년 만에 레밍턴사는 제품을 출시하고. 레밍턴사는 ‘톰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에게 ‘홍보’ 차원에서 타자기로 작품을 쓰도록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1874~1880년에 팔린 타자기는 5000대에 불과했다. 개인을 판매 타깃으로 잡은 탓이다. 당시만 해도 개인적인 서신은 직접 손으로 써야 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던 때다. 이후 기업에 접근한 결과, 1886년까지 6년간 5만대가 팔렸다. 사무실 필수품으로 자리잡는 사무 혁명의 출발이다.

이 타자기는 1874년부터 레밍턴사에서 제작해 레밍턴 1호라는 명성을 얻었다.

Remington Model 1  Typewriter

이후 1920년 전동식 타자기 발명에 이어 1961년부터는 수정, 재생이 가능한 기억장치를 갖춘 타자기가 나오면서 타자기는 사무혁명의 대명사가 됐다.

우리나라에 타자기가 소개된 것은 1914년이다. 재미교포인 이원익이 영문타자기에 한글활자를 붙인 한글타자기를 고안했다. 그 이래 몇 가지 한글타자기가 나오긴 했지만 실질적인 한글타자기는 1950년 공병우에 의해 개발됐다. 한글타자기의 시초다.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개인병원인 공안과를 개원한 의사다. 이른바 ‘공병우 세벌식타자기’는 한글의 원리를 타자기의 자음·모음·받침의 글쇠로 구현한 것이다. 정부는 1961년 모든 공문서를 타자기로 작성토록 제도화하기에 이르렀다. 한때 작가들 사이에서는 ‘글쓰기 도구가 아닌 서구 신문명의 매개물’로 입에 오르내릴 만큼 널리 사용됐다.

공병우 박사와 그가 개발한 타자기

한국에서는 6·25전쟁 이후 클로버(경방공업주식회사)와 마라톤(동아정공)에서 생산, 판매되다가 컴퓨터의 등장으로 1996년 국내 타자기 생산은 중단됐다.

아직도 중고장터에서 소품으로도 인기가 높은 예쁘장한 마라톤 타자기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 타자기도 1980년 말부터 컴퓨터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100년 영광’을 내주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타자기 생산은 1996년 중단됐다. 그래도 아직도 고물상, 박물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타자기를 생산하던 인도 뭄바이의 ‘고드레지 앤드 보이스’라는 회사가 주문이 없어 문을 닫았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2011년 4월에 보도했다. 최후의 타자기 공장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기술 발달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인데 어쩌랴.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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